이러한 '물의'를 빚은 전형적인 예로서 카라바조(Caravaggio)를 들 수 있는데 그는 1600년경에 활동했던 대담하고 혁명적이었던 이탈리아 화가였다. 그는 당시 로마의 한 성당 제단을 장식할 성 마태오의 그림을 위탁받았다. 그 그림은 성 마태오가 복음서를 집필하고 있는 장면과 그 복음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의 집필에 영감을 불어 넣어 주는 한 천사를 그리도록 되어 있었다.
상상력이 대단히 풍부하고 타협을 모르는 젊은 화가인 카라바조는 늙고 가난한 노동자이며 단순한 세리였던 마태오가 갑자기 앉아서 책을 쓰게 되었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내느라 고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머리에 먼지 묻은 맨발로 커다란 책을 어색하게 거머쥐고, 익숙하지 않은 글을 쓴다는 긴장감 때문에 걱정스럽게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성마태오>(아래)를 그렸다.

그의 옆에는 방금 천상에서 내려와 마치 선생님이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노동자의 손을 공손하게 잡아 이끌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천사를 그렸다. 카라바조가 제단 위에 걸게 되어 있는 이 그림을 성당에 납품하자 사람들은 이 작품이 성인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분개했다. 그 그림이 수락되지 않아 카라바조는 그림을 다시 그려야만 했다. 이번에는 그도 모험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사와 성인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관한 인습적인 관념을 엄격하게 준수했다 (아래).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은 카라바조가 생생하고 흥미있게 보이도록 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지금도 아주 훌륭한 그림에 속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그림이 첫번째 그림보다는 덜 정직하고 보다 불성실해 보인다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이렇게 젊은 카라바조는 죽었다. 그리하여 그를 위한 묘비. 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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